세 가지 색 후회

재미로 읽어주세요.

** 5~7편 사이로 계획했던 글인데, 자꾸만 글이 늘어지더니 무려 25편이나... 늘어지는 글 탓에 저도 자꾸만 기력이 딸려서 사실 서둘러 끝낸 감이 없지 않습니다. 덕분에 처음에 생각했던 에피소드나 뒷이야기들을 넘긴 게 많아서 뒤풀이 겸해서 왔습니다. 가볍게 쓰고자 하는 마음에 썰체로 풀어봅니다. 미카와 지민의 이야기. 석유 장사 아저씨의 농간으로 지민...

오늘따라 유난히 일진이 좋은 날이었다. 메이드가 깨우러 오지도 않았는데 눈이 번쩍 떠졌고 심지어 컨디션도 아주 좋았다. 가뿐한 걸음걸이로 식당에 내려가니,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 보구나.’ 할아버지께 칭찬도 들었다. 항상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던 엄마의 목소리가 오늘은 기분 좋게 하이를 찍는다. “혜민이가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지, 능력이 없는 애가...

환상과 모험의 나라로 가는 계단이 있다면 바로 이 계단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흔한 핸드 레일 형 계단 난간이 아닌, 하프의 유려한 곡선을 연상시키는 폴 난간을 따라 강화유리로 된 계단 데크를 밟고 올라가는 내내 지민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그것이 2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아니면 발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계단이라 긴장해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 계단을 ...

어리석게도 그 아이에게 눈이 가는 이유가 단지 호기심이라 생각했다. 자신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호의적이지도 않는 공간에서 그 아이는 능숙하게 자신의 존재를 투명인간처럼 감추며 적응을 해나갔다. 뻔한 대인관계가 주를 이루는 환경에서 살아온 태형에게 확실히 지민은 신선한 존재였다. 그러니 자꾸만 그에게로 시선이 가는 이유가 호기심이 아닐 리 없다고 생각했다....

윤기의 사무실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네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연우는 태형을, 태형은 지민과 연우를, 지민과 윤기는 태형과 연우를 번갈아 가며. 노려본다고 해서 적의를 가지고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는 것은 아니고, 저 인간은 무슨 용건으로 여기 앉아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더 가까울 것이다. “김태형. 너는 어째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자주 보는 ...

지민은 자신의 생일에 스케줄을 잡지 말라는 부탁을 가볍게 무시해버린 윤기에게 따지러 대표이사실로 쳐들어갈 때만해도 몰랐지. 그 문 너머에 김태형이 있을 줄은. 슈가 엔터에서 볼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사람을 뽑으라면 상위 세 손가락에 뽑힐 인물이었으니까. 첫 번째는 유엔 사무총장, 두 번째는 민윤기의 아버지쯤 되지 않을까. 하여튼 지민이 딱히 일부러 태형을 ...

“우하하하. 졸라 웃기네.” 자신의 집을 팔겠다는 태형의 말에 지민의 웃음이 터졌다. 그냥 웃은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포복절도. 지민이 허락만 하면 당장이라도 데리고 집으로 가려던 태형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지민이 웃은 것은 난데없이 집을 팔겠다고 나선 태형 때문이 아니라, 태형의 그 말에 윤기가 10년쯤 묵은...

태형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아있는 허여 멀건한 남자를 주시하는 중이다. 지금껏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이렇게 대놓고 푸대접을 받아본 적 없는 태형이라, 표는 내지 않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왜인지 최근 들어 이 비슷한 상황을 자주 겪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미카와의 만남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그 미남자의 예의바른 조소와 맞은편 민윤...

손목에 찬 시계를 돌려 시간을 확인한 태형의 눈가에 짜증스러움이 몰려들었다. 글로벌 마케팅 팀과의 미팅이 늘어진 탓이다. 이러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난다. 회의가 예정 시간을 넘기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특히 오늘 사안처럼 중요한 안건이면 오히려 제시간에 끝나는 것이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럴 땐 제 개인적인 약속 따위는 미련 없...

그러니까 내 후회의 색은.... ---------- “영감탱이 같은 자식. 또 지만 세상 물정 다 알지.” 제 불만에 동조를 하지 않는 지민을 흘겨보며 연우가 짜증을 낸다. 같은 손녀임에도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 대한 처우가 경혜민과 달라도 너무도 다른 탓에 연우는 기본적으로 화가 넘치는 스타일이다. “애초에 경혜민이랑 니가 다르게 태어났는데 어떻게 같은 대...